왜 아이들은 넓은 곳을 두고 숨을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교구도 놓고 폭신한 매트도 새로 깔았건만, 아이들이 굳이 책상 밑에 숨어 있습니다. 커튼 뒤에서 소곤거리거나, 좁은 인디언 텐트 속은 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할까요?
교사 입장에서는 참 신경이 쓰이는 장면입니다. 한눈에 들어오던 시야에서 아이들이 벗어나니까요. 행여 다칠까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죠. 대체 아이들은 왜 하필 좁고 답답해 보이는 구석을 찾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어른도 똑같아요
식당에 들어갔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홀 한가운데 테이블과 벽쪽 구석 자리 중 어디가 편하신가요? 대부분 등 뒤가 막혀 있어 든든하고, 앞으로는 홀 전체가 내다보이는 구석을 고릅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이 1975년에 내놓은 '조망-은신 이론(Prospect-Refuge theory)'입니다. 사람은 넓게 내다보면서 동시에 내 몸을 숨길 수 있는 자리를 편안하게 느낀다는 겁니다. 짧게 줄이면 "보되, 보이지 않기"죠.
이런 선호가 실제로 있다는 건 여러 곳에서 관찰됩니다. 다만 그게 타고난 본능인지, 살면서 쌓인 경험이 만든 습관인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결론은 같습니다. 아이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건 유별난 행동이 아니라, 선생님이 식당 구석 자리를 고르는 그 자연스러운 마음과 똑같다는 것.
아이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위해 직접 고른 재료
2016년 미국의 콜웰 연구진이 3~5세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교실에 너희만의 공간을 만든다면, 어떤 재료가 좋겠니?"
그리고 아이들이 말한 재료를 실제로 가져다주고 시간을 줬습니다. 아이 열 명 남짓을 지켜본 작은 연구라 통계로 검증된 결론이라기보다 자세히 들여다본 사례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이 고른 것은 담요, 침대 시트, 종이 원통처럼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힘을 모아 공간을 만들었죠.
영유아 교육에서는 이런 재료를 '루즈 파츠(Loose Parts, 정해진 형태가 없는 놀이 재료)'라고 부릅니다. 1971년 영국의 건축가 사이먼 니콜슨이 내놓은 개념이에요. 정해진 용도가 없기에 아이들이 마음대로 덮고, 합치고, 변형하며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훌륭한 재료들입니다.
니콜슨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어른이 공간을 너무 완성해 놓으면, 만드는 즐거움을 어른이 다 가져가버린 셈이라고요.
아이는 가려지되, 세상을 보고 싶어 합니다.
참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이 어른 눈에 완전히 안 보이는 꽁꽁 숨겨진 곳을 고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자에 창문 구멍을 내거나 책상 밑에서 바깥을 향해 고개를 내밀며, 선생님에게 '얼마나 보일지'를 스스로 정합니다.
이는 선생님의 통제에서 도망친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 나를 지켜보는 곳에 계시다는 걸 아는 채로, 그 안에서 '자기 몫의 거리'를 만든 겁니다. 거리를 두는 것과 떠나는 것은 다르니까요.그러니 아이가 만든 구석 공간이 선생님 눈에 들어온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지켜봐 주셔도 됩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얼굴이 덮일 수 있는 자리, 가구가 넘어질 수 있는 자리는 다른 이야기예요. 그건 프라이버시가 아니라 안전의 영역이고, 망설일 일이 아니죠.
연령에 따라 다른 '구석의 의미'
다만 위에 소개한 연구들은 모두 만 3세 이상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영아반 이야기는 연구가 확인해준 내용이라기보다, 발달 상식에 기댄 해석에 가깝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 만 3~5세 (유아반): 이 시기의 구석은 '아지트'입니다. 아이들은 세 살 무렵부터 '비밀'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비밀을 숨을 장소와 연결지어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비밀을 만들고 누구를 초대할지 정하는 것 자체가 놀이죠. 천을 걷었다 내렸다 하며 스스로 노출 정도를 정할 수 있게 해주면 좋습니다.
■ 만 1~2세 (영아반): 이 시기의 구석은 자극을 줄이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쉼터에 가깝습니다. 이 시기의 진짜 안전기지는 공간이 아니라 선생님이거든요. 영아는 믿는 어른이 시야에 있을 때 오히려 더 멀리, 더 오래 탐색합니다. 그러니 등을 편안하게 기댈 수 있으면서도, 고개만 들면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개방형 틈새가 적당합니다.
같은 쿠션 하나, 같은 천 한 장이라도 놓는 위치가 달라지는 셈입니다.
아이들의 공간, 하지만 매일 치워야 하는 교실이라면
하지만 우리 보육 현실에서는 한정된 교실을 다 함께 써야 하고, 청결과 안전도 유지해야 하기에 하원 전에는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죠. 며칠씩 남겨두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교실이 훨씬 많습니다.
공간을 다음 날까지 남겨둘 수 없다면, 선생님의 수고는 덜고 아이들의 마음은 다독이는 소소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 철거 대신 '사진으로 저장하기'. 매일 치워야 한다면, 아이와 합의하는 '저장 의식'을 치러주세요. "멋진 집이네! 오늘은 청소해야 하니까, 내일 이어서 놀 수 있게 선생님이 사진으로 찰칵 저장해둘까?" 말없이 공간이 사라진 게 아니라 기록되었다고 느끼면 실랑이가 줄어듭니다. 찍어둔 사진은 알림장에 바로 쓰시면 되고요.
■ 다시 지을 수 있다는 '믿음' 주기. "내일 오면 또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어"라고 알려주세요. 매일 짓고 해체하는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공간을 내 마음대로 조작해보는 즐거운 놀이가 됩니다.
■ 두세 곳 열어두기. 구석 자리가 한 곳뿐이면 매일 다툼이 생깁니다. 교실 틈새 공간을 두세 개 허용해 주시면 "선생님 쟤가 안 비켜요!" 하고 중재할 일이 훨씬 줄어듭니다.
선생님도 가끔 기댈 '구석'이 필요하다.
우리 선생님들은 하루 여덟 시간 내내 시야에 완전히 노출된 채 일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동료에게, 학부모님들에게요. 숨을 곳, 마음 기댈 작은 틈새가 필요한 게 어찌 아이들뿐이겠습니까.
다음에 책상 밑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시면, "나와라~" 하고 부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 아이들은 이미 가장 안전하게 선생님이 보이는 자리를 골라냈고, 선생님은 오늘 애써 하실 일이 하나 줄어든 셈이니까요.
오늘도 교실이라는 넓은 광장에서 고군분투하신 선생님. 오늘 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엔 꼭 등 뒤가 든든하게 막힌 편안한 구석 자리에서 숨을 푹 고르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반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석은 어디인가요? 댓글로 알려주시면 다음 편에 소개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Appleton, J. (1975). The Experience of Landscape. New York: John Wiley and Sons.
Nicholson, S. (1971). How NOT to Cheat Children: The Theory of Loose Parts. Landscape Architecture, 62, 30–34.
Corson, K., & Colwell, M. J. (2013). Whispers in the Ear: Preschool Children's Conceptualization of Secrets and Confidants. Early Child Development and Care, 183(9), 1215–1228.
Colwell, M. J., Gaines, K., Pearson, M., Corson, K., Wright, H. D., & Logan, B. J. (2016). Space, Place, and Privacy: Preschool Children's Secret Hiding Places. Family and Consumer Sciences Research Journal, 44(4), 412–421.
Lynch, L. (2017). A Space Apart: Enabling the Creation of a Withdrawal Space in the Preschool. SAGE Open, 7(1).